후터라이터와 문서

[Msg551] &10/21/2011 11:33:56 AM

후터라이트는 간증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500년 가까이 무소유 공동체를 이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길은 쉽지 않았다. 500여년전 약 5만명이었던 사람들이 한때 15명으로 줄어들 정도의 대학살도 경험했었다. 소수의 남은 사람들의 겨우 다시 공동체를 시작했을 무렴에 전쟁터 한가운데 던져지기도 했었다. 삶의 터전이 전쟁터가 되었을 때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아무도 살아보지 않았고 개척되지 않은 땅으로 들어가서 기아에 허덕이기도 했다.   

수많은 그들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믿음에 대해서, 실행에 대해서, 삶에 대한 얘기를 알려주기 위해 외부 세계에 향해서 위해 펜을 든 후터라이트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오히려 외부세계는 후터라이트에 대해 관심이 많고, 너도 나도 후터라이트의 정체와 믿음, 실행에 대해서 떠든다. 최근들어 많은 사회공학자들, 신학자들, 공동체 운동가들 등등이  저 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이들에게 왔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후터라이트 또는 아미쉬와 같은 아나뱁티스트 공동체를 살펴보고 논문을 내고, 책을 발간한다.

그들이 후터라이트에 관심을 보이는 부분적인 이유는 그들의 위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후기 기독교 사회에 접어든 서구 사회는 그들의 과거의 가치와 실행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주류 기독교 사회는 서서히 움추려 들고 있다.

번잡스러운 새삼스러운 관심에 내가 아는 후터라이트는 시쿤둥하다.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떠들고 관심만 보이지, 실재로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사랑과 순종이 없고 그 결과 삶이 없다면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다.

제임스 밸리 콜로니의 문은 외부 세계 방문자에 대해서 연지 이미 20년여년이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 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아직 후터라이트들이 했던 것처럼 “서로의 필요를 위해 드려진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한다. , 말은 많은데 “사랑”이 없는 것이다.

Smiley face

그들의 눈에 후터라이트와 아나뱁티스트에 관련된 수많은 논문과 책과 학술회의는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처럼 보이는 것 같다. [고전 13:1]

그들에게서 종교적 위선자들에 대한 피곤함을 자주 발견한다. 자기를 죽음에 넘김으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철저하게 순종하기를 원치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증거하고, 기독교 신학과 교리에 대해서 논쟁하 것만으로 자족하고 자긍하는 종교쟁이들에 대한 거부감 있다. [ 7:26]

그들은 그들의 순종의 삶을 통해서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들 사이의 친밀하고 헌신적인 관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전달되기를 원한다. 그래서도 그들은 먼저 침묵의 노동을 통해서, 공동체의 존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현실성과 진실을 증거 하려 하지 함부로 자기 소리를 높이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펜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삶의 증거를 통해서 외치는 그들 영혼의 외침의 존재를 증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즉, 와서 보고 그들의 삶의 헌신이 얘기하는 바를 주의 깊게 보고 영혼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불러 오려면, 누군 가는 메신저가 되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the-document-of-hutte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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