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주신 단 하나의 계명

&9/18/2013 2:15:33 PM

구약은 모세의 율법으로 요약 될 수 있다. 율법의 대 강령은 두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40]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 곧 교회 공동체에게 새로운 한 개의 계명을 주셨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하나의 새 계명을 주심으로 율법을 더 완전하게 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andment I give unto you, That ye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요한복음 13:34]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15:12]

 구약적 관점에 의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라디아서5:14]

 이 일을 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 형제에게 한 일이 곧 예수님에게 한 일이라고 하신 것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 한다고 고백하고 주장 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에 실패한 이들, 곧 서로 사랑하는 것을 거절하면서도 교회 안에 있는 자칭 신도들을 예수님이 정한신 법을 어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심판 하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3]

예수님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은 하나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제자들이 서로 형제로 받아들여서, 예수님 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셨다. 곧 자신을 죽여서 친구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자신을 죽여서 음료와 빵으로 주신 것이다.

주님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법은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 하라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예수님이 주신 단 하나의 계명 곧 천국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12]

그분처럼 자기(에고와 육체적 생명)를 죽이기까지 사랑의 명령에 순종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계명이다. 서로 사랑하는 이 관계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공동체의 실체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예수님이 주신 단 하나의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법을 지키고 실천하지 않고 주여 주여 하면서 종교적인 실행에만 열중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들은 천국의 법을 어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주신 하나님 나라의 법을 어겼기 거기에 따라 심판이 임할 것이다.

양과 염소는 구분될 것이다. [마태복음 25:31-40] 곧 사랑을 실천한 양과 서로 사랑하기를 거부하고 자기 구원만을 위해 자기를 높이고 종교적 외식과 자기를 위한 영성에만 열중한 염소를 가르고 심판을 하실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서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일이다. 성령을 거역하고 수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짓이다. 

이는 부자들과 기득권에 입 맛에 따라 만들어진 거짓 복음이다. 이기적인 내가복음에 의지하는 것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종교적 외식을 벗어나야 한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자기(에고)를 비우고 낮추어 서로 종이 되어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길로 가야 한다. 자기를 비우고 낮추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거절하고 종교적 외식과 종교적 지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들을 예수님은 저주 하셨다. 이들 외식하는 자들은 자기만 지옥의 길(자기를 채우고 높이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길(자기를 비우고 종이 되는 길)을 가고자 하는 자들도 막고 그들을 더한 지옥 자식(자기를 높이려는 자들)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1-15]

불행히도 공적인 기독교는 소유문제와 폭력문제에 실패했다. 역사의 고비마다 하나님 나라의 샘으로부터 언제나 새로운 도전과 충격이 이 세계 안으로 들어 왔으나, 공적인 교회에 의해 철저히 거부 당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운동은 공적인 교회와 대립하게 되었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the-one-commandment-of-jesus

 

고립된 초월적 경험이 아니라 성육신으로 임한 하나님의 나라

&2/17/2014 12:07:02 PM

고립적 명상은 자위 행위를 닮아 있다. 베드로의 초막은 나르시시즘적 이탈이다. [마 17:4]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홀로 즐거울 수 있는 길이 있어도 그럴 수 없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 곧 성육신의 정신을 따라 공동체적 삶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참된 기쁨은 사랑의 안에 있고, 사랑은 오직 관계성 안에서만 존재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고립적이고 분리된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부르심은 동행이다. 천상 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자를 향한 부르심이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사랑을 실행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함으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오직 자기만을 기쁘게 하기 위한 미친 짓을 그만 두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제자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요 15:12] 사랑하는 존재를 위한 헌신으로 즐거워하라. [요 15:11] 이게 예수의 길을 따른 자의 ‘도’이다.

사랑하는 아내 또는 남편을 위한 손길, 배려의 말, 섬김을 통해 남편 또는 아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 바른 길의 그림이다. 혼자 황홀경에 빠지는 명상적 즐거움은 건강한 기쁨이 아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주고자 한 기쁨은 자기 부인을 동반한 사랑 안에 있다.

결국 사랑의 존재 자체가 되는 것이 가야 할 길이다. 존재 자체가 다른 이의 어떠함과 상관 없이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데 있어서 사적 이익과 계산이 개입되지 아니해야 한다. [마 5:46~47] 아버지처럼 사랑을 은혜로 베푸는 자체를 기쁘게 여기는 사랑의 존재가 될때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 [마 5:45

하나님은 사랑이다. [요일 4:8] 아버지가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푼다. 그래서 선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비를 내리고 햇빛을 비춘다. [마 5:45]

참 사람의 참 기쁨은 사랑 안에 있다. [요일 1:4, 요 15:11]

술이 잠시 기쁨을 주고, 마약에 환락에 취하게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중독되면 건강하지 못하다. 자위적 기쁨이고, 자기만을 위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의 생명을 얻고 풍성을 얻는 것을 보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사랑이 선하고 아름답다. [요 10:10]

영적 수련을 하는 궁극적 목적이 자기 자신의 구원과 기쁨만인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자기를 향한 자기 사랑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경건의 훈련과 즐거움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과 같은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 있다. [약 1:27]

더불어 즐겁고 천국 안에 있기 위해서는 사랑의 봉사와 섬김이 뒤 따라야 한다.

그래서 흔히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노동의 즐거움을 최상의 즐거움으로 본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쁨을 누리고 생명을 받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형제자매의 관계 안에서 형제 자매를 위한 노동과 섬김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이다. 이것이 육과 에고를 거슬러서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고 살아 있는 육체를 살아 있는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이다. [롬 12:1]

자신을 드려 사랑하는 자가 기뻐하는 것을 보는 즐기는 행복을 누려라. 이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길이다. 이 진리를 충실히 따르는 자들이 모인 곳이 천국이다.

천국은 서로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서로가 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지옥과 세상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노예 삼고자 하는 곳이다.

천국적 삶의 방식을 내면화 한 사람들이 모이면 공동체적 삶이 형태나 나타나게 된다. 이들의 삶의 내용이 이 땅에 임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모습 중 하나이다. 

더 이상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지 않은 사람들의 연대가 공동체이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서로의 필요를 위해 바쳐진 삶을 사는 사람들의 연합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이며, 하나님의 나라이자 공동체이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isolated-mediation-and-the-d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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