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는 규모에 있지 않다!

&1/29/2014 10:57:51 AM

천국이 규모에 있다고 무의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세속 종교화한 자본주의 또는 돈의 메시지이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천국은 물리적 규모에 있지 않다. 사람 숫자에 있지 않다. 다수가 인정하는 인지도에 있지 않다. 하느님 나라는 절대로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아니다. 천국은 국민투표로 오지 않는다. 

천국이 물리적 규모에 있다면 제국의 황제가 사는 곳이 천국일 것이다. 천국이 돈의 규모에 있다면 재벌들이 먼저 천국에 있을 것이다.

천국은 규모에 있지 않음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에 있다. 천국의 생명은 진리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접촉하고 누릴 수 있다.

세상적 생각에 무의식적 삶의 방식이 점령당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천국은 규모에 있지 않다는 진리에 지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삶으로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고 반대로 산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는 천국은 사람의 숫자, 건물의 규모, 세상적 명성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형 건물, 멤버의 숫자, 그리고 유명세에 집착을 한다.

그 사람의 믿음의 어떠함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에 주의하지 말라. 그 사람의 삶, 시간과 돈을 어디에 투자하는 지를 보라.

생각과 가슴과 그리고 손발이 각각 안드로메다만큼 먼 위선자들은 극히 위험한 사람들이다. 자신만의 왕국을 위한 건물의 규모, 사람의 규모, 영향력의 규모 확대를 위해 다른 사람들 안의 천국을 파괴한다. 이들은 지옥 자식이다. 천국을 빙자해서 지옥을 퍼뜨리는 독사의 자녀들이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천국은 규모가 아니라 의와 평안과 기쁨에 있다.

천국의 생명을 가진 사람, 천국 생명의 사람이 모여야 천국을 이룰 수 있다. 천국의 생명이 없는 사람 1000명, 10,000명이 모여도 천국은 없다. 그 중심에 천국이 없으면 지옥적 에너지만 더해질 뿐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더 지옥에 가까워 진다. 

단지 두 사람이 모여 있어도 천국의 누림이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들 모두에게 천국의 생명이 있고, 사랑의 교제가 있다면 거기에 천국이 있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천국은 규모가 아니라 생명에 있다.

건물의 규모가 천국을 가져오지 않는다. 건물은 죽었다. 건물은 자기 복제 능력이 없다. 스스로 자라지도 않는다.

천국의 생명은 스스로 자란다. 자기 복제 능력이 있다. 지극히 작은 어린 아이라도 그 중심에 천국이 있다면 생명의 방식으로 성장할 것이고 자기 복제를 할 것이다.

규모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젖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천국을 파괴하는 미친 짓은 하지 말라.

에고의 허영심과 욕심을 버려라. 겨자씨 같은 작은 것이라도 거기에 생명이 있으면 천국은 느린 것 같지만 확실하게 성장한다. 결코 조바심이 내며 규모에 집착하지 말라. 거기에 천국의 생명이 없고 천국도 없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quantity-vs-quality-in-heaven

십자가를 둔 싸움, 하나님 나라와 바벨론

&080820140300

개인주의자들, 또는 세련된 이기주의자들은 십자가를 볼 때 거기서 사적 안식과 위로만을 찾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우선적 관심이 이생에서의 복, 사적 구원과 행복, 영생 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웃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자기 희생이라는 십자가의 원칙을 통해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질서에 복종시키고, 타락한 세상을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복종시키기 위해서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 

본질적으로 기관으로서의 제도 기독교는 현실 안주주의적이다. 그래서 이들은 본능적으로 영적 영역과 세상적 영역을 구분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자기 희생 없이 안락한 영적 현실 안에서 도피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구지 타락한 세상에 성육신 해서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쓰고 고통을 관통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현실안주주의적인 행복을 위해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이 감당할만한 만만한 자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 교회 공동체는 역동적이다. 세상에 대해서 위협적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과 세상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그리스도가 오셨기에 하늘 나라와 이 세계는 분리될 수 없다. 하늘 나라의 질서에 따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이미 왔고 그의 나라가 확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목숨을 포함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기꺼이 대가로 지불함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를 찾고 부르고 제자로 세우신다. 하나님 나라의 돌파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모세가 이집트 왕자의 신분을 버렸다. 그리스도의 이후의 수 많은 제자들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리스도처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하기 위해 투자했다. 이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들이다. [Hebrews 11:38]

그리고 세상은 이들이 살기에 합당한 장소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궁중에도, 좋은 집에도 있지 않는다. 이들은 세례 요한처럼 광야에 거하 기도 한다. [Matthew 11:7 ~ Matthew 11:9] 때로 세례 요한 때에 엣세네파가 그렇게 한 것처럼, 선지자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이들은 세상과의 대립, 긴장 때문에 분리되어 광야에 거한다. 역동적인 이들의 믿음과 운동이 이들을 광야로 몬 것이다. [Hebrews 11:38]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the-fight-to-put-up-the-cross-babylon-and-the-kingdom-of-god

돈의 지배가 확립된 내적 기초

[Msg805] &6/16/2013 11:56:53 AM

모든 체제는 그 체제를 뒷 받침해주는 인간의 내적 기초가 있기 마련이다. 농업, 식당업 등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항상 배고프기 때문이다. 의상 디자인, 미술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 미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자본의 지배가 확립된 이유는 무엇일가? 거의 모든 인간이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수의 사람들이 1 억만 주면 가족도 버릴 수 있다는 설문 조사 보고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돈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돈의 지배한 체제가 완성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더 사랑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이 돈을 더 사랑했다. 그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그들의 힘이 강화되어 도시를 중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종속시키자, 사람들이 그리로 더 몰려 들었다. 일단 돈이 지배하는 체제 안에 들어가면 거의 사람들은 결국 돈을 가장 사랑하는 가치 체제에 점령을 당한다.

돈은 사람들을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할 힘을 준다. 그 힘을 인식한 소수의 병든 영혼들(사이코패스, 마키아밸리스트)은 돈의 힘을 획득하기 위해서 병적으로 돈을 추구한다. 보다 독하고 강한 동기를 가진 이들이 결국 자본을 축적하고 시장을 지배하고, 이익을 독점한다. 이들이 시장을 통제하고 결국 건강한 시장기능을 마비시키면 통한 돈을 통한 병든 자들의 지배가 시작된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지배를 받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소극적으로 무자비한 사람에게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 다수의 사람들은 돈을 추종한다. 이러한 돈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시장을 이미 조종하고 있는 소수에게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대중은 빚의 노예, 곧 돈의 노예가 된다.

시스템 위에서 이 모든 것을 강제하는 소수의 사람은 생존과 자유가 아니라 사람들을 빚으로 지배하고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도 그래서 세상을 차압하기 위해 돈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자기를 위한 돈을 축적해서 스스로 자기만 구원하려는 세속 구원론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먼저 하느님이 정해주신 사람의 도리, 인간 구원 길로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충실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현 시대, 곧 현 세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돈의 지배를 경험해야 돈이 지배하지 않는 공동체적 체제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어쩌면 돈의 지배 하에서 고생하는 탕자의 경험이 대다수 인간에 필요한 지도 모른다. 그래야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돌아온 탕자를 위한 것이지, 아직 돈에 중독되어 취해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돈독을 이해하고 그 것 때문에 자기가 죽어가고 있음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된 사람들일 지도 모른다.

사무엘상 8 장의 얘기는 이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이 왕의 질서를 받아 들인 이유도 동일하다.

사무엘상 8장의 자유인들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했다. 자주성과 주체성을 포기하고 노예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스스로 왕에게 종속되어 왕에게 힘을 몰아줌으로써 이들도 다른 나라들처럼 강력한 왕의 덕을 봐서 노예들을 더 부리고 싶어 했다. 

[삼상 8:20] 돈으로 지배하고 군림하고 싶기 때문에 돈에 힘에 마음이 굴복당해 스스로 돈의 노예가 된 것이다. 부유한 노예가 가난한 자유인보다 좋은 것이다. 

사람들이 교만한 생각을 버려야 돈에 대한 환상을 버릴 수 있다. 돈이 얘기하는 유토피아가 거짓임 알아야 돈의 지배가 끝날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의 기초는 교만과 거기서 나온 지배욕, 허영심 때문이지 않을까?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the-basis-that-allowed-money-to-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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