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대해서 정직하기

[Msg507] &6/28/2011 8:25:11 AM

후터라이트 친구들을 만나면 특이한 점이 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그들은 진리에 대해서 정직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경말씀에 명명백백하게 나온 진리라 하더라도 우리는 에고의 자존심 때문에 거부한다. 또는 대담하게도 상황논리를 갖다대고, 현실론을 들이댄다.

그들 후터라이트, 아미쉬의 표현대로 우리의 마음은 High Mind이다. 우리의 마음이 너무 높은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가 물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 중 다수는 빌라도와 같아서 왜 빌라도가 잘못했는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빌라도와 같이 마음이 높은 자들이다. 우리의 에고로 진리를 판단하려 한다.

세속에 찌든 우린 진리에 대해서 정직하지 않다. 빌라도처럼 자아를 동원해서 진리를 분별하고 판단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시대는 인간 에고 지배의 시대이고 소위 크리스챤이라는 사람들도 자기 배를 신으로 삼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시대이다. [ 3:19, 16:18] 그러니 어떻게 진리에 정직하게 반응하겠는가?

모든 사람이 진리를 통해서 자유로워 지는 것은 아니다. 돼지와 개에게 안된다. 오히려 진리를 전한 사람도 위험에 빠뜨리고 자기들도 더 큰 죄를 짓는다. 이들은 결코 진리를 진리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상당수가 이 분류에 들어갈 것으로 믿는다.

마음에 간사가 없이[ 1:47, 32:2]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정직한 길을 찾아야 할 이유가 있다. 다림줄

빌라도와 대응되는 자가 백부장이다. 둘다 같은 이방인이다. 각각 이방인의 나쁜 모델과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빌라도는 그리스 철학의 전통을 따라 이성으로, 인간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재단하려 했다. 에고의 왕좌는 굳걷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진리를 에고의 오만함을 만족시켜주는 치장품이 될 뿐이다.

백부장은 진리에 순복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진리는 분석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닥치고 듣고 복종해야 하는 절대적 권위의 진실이었다.

예수님은 마음에 간사가 없는자가 참 이스라엘이라고 하셨다. [요 1:47] 주님은 복잡한 마음과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바리새인 니고데모를 제자로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단번에 주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을 제자들로 받아들였다.

진리의 진리됨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에고에, 이성에 있지 않는 것 같다. 그 이해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 곧 직관적 영감에 의해서 온다고 여겨진다. [고전 2:4]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러한 직관적 이해와 즉각적 순종은 에고를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임하는 신적인 능력이다.

하급 직업 군인이며 순결하고 단순한 백부장은 투명한 눈으로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옳바른 태도, 곧 최고의 믿음을 보여 주었다. , 즉각적으로 알아보고, 닥치고 순종하는 것이다.

 , 그는 진리에 대해서 정직하게 반응했다. 그것이 진리를 통해 자유를 얻는 구원의 길이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being-honest-about-the-truth

Calendar

<<  October 2018  >>
MonTueWedThuFriSatSun
24252627282930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1234

View posts in large calendar

RecentComments

Comment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