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제시한 길은 왜 소수만 선택하나?

[Msg993] &1007071533a

다수가 자기부인의 길을 갈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자기부인의 길을 가야 새로 세워진 나라에 불평등과 죄가 없다. 불행히도 다수는 절대로 자기 부인의 길을 가지 않는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 자기 부인을 거절하는 자들까지 받아들이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의 법을 어그러 뜨린 다면 거기는 더 이상 하느님의 왕국이 아니다.

하느님의 왕국을 위해서는 본질적 원칙을 타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원칙을 고수하면 오직 소수만이 선택해서 들어올 수 밖에 없다다수를 위한 길이라면 자기 희생에 기반한 사랑이라는 하늘 나라의 법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을 포기하면 거기는 하늘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왕국은 오직 이 법을 실행할 수 있는 소수만을 위한 길이다. 나머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본 냉혹한 현실 인식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길을 가기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의 표현으로 소수만 선택하는 좁은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주류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 않을까?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why-do-only-few-choose-to-follow-the-way-of-the-christ

내면의 중심 곧 엔진, Core의 대체

[Msg321] &091021.2305:

엔진과 연료를 바꾸어야 진정한 혁신이다. 엔진과 연료를 그대로 둔채 나머지를 바꾸는 것은 개선이다.

개선으로 넘을 수 없는 한계는 있다. 그 때는 엔진과 연료를 바꾸는 혁신이 필요할 때이다.

내연기관 기반의 프로패날을 가지고 있는 비행기로 음속을 돌파할 수 없다. 제트 엔진이 나와야 한다.

말이 끄는 마차를 아무리 개선해 봤자 교통혁명을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을 아무리 개선하고 변형시켜 봤자. 그 사람의 중심, Core, 엔진을 바꾸지 않고서는 그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자아 중심적인 사람이 아무리 습관과, 종교와, 매너를 바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은 자아로부터 나와서 자아를 통해서, 자아를 의지하고, 자아를 위해서이다.

사람의 자기 중심적, 육신적인 욕망에 의해서 발동이 걸리는 옛 아담의 생명이 먼저 죽어야 한다. 옛 생명이 심겨진 바닥에서 새 자아 곧 새 생명이 자라 옛 자아를 대체함으로써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

사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생명으로 대체된 사람만이 근본적 혁신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다.

사랑으로부터 나와서 사랑을 통해서 사랑을 힘 입어 사랑을 위한 생각, 결정, 행동, 습관, 생활 방식, 삶의 양식, 존재 방식, 천국을 세워 나가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중심, 아담의 생명에 변화를 줄 것인가?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Msg321-ENG

Calendar

<<  December 2018  >>
MonTueWedThuFriSatSun
2627282930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31123456

View posts in large calendar

RecentComments

Comment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