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

[Msg552] &11/1/2011 7:22:54

예수님을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는 명백하다. 현재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엎으라는 것이다.

여기에 온건주의자인 자칭 그리스도인과 예수님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 스스로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믿고 주장하는 주류 기독교인들은 온건주의자들다. 그래서 주류 기독교인들은 삶의 방식을 지키고자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를 적당한 마사지를 거쳐서 전달되게 만들거나, 의도적으로 다수의 인식에서 배제시켜왔다.

주류 기독교인의 기준에 의하면 예수님은 명백히 극단주의자다. 예수님은 적당한 체면치례만으로 넘어가려는 대다수의 바램을 간단히 밟아 버리셨다. [ 19:18~22] 예수님은 현재 우리의 삶의 기반을 부셔 버리고 새로운 기초 위에 다시 세울 것을 요구하신다. , 다시 태어나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면 그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셨다.

주류 기독교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린 오직 온건한 방식, 충격적이지 않은 방식의 변화만 받아들일 수 있고, 필요할 뿐이다. 그렇다! 주류 기독교도의 대변인인 칼빈의 주장대로 우린 완벽하지 않다. 맞다 우린 모두 죄인일 뿐이다. 그래서 우린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사랑의 화신인 하나님은 우리 용서하실 것이다! 얼마나 사악한 논리인가? 그들은 예수님 화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분은 단지 과장법의 대가였을 뿐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해서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적절히 튜닝하고 양심의 저항을 무력화 시켰다. 예를 들어 이런식이다.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라!, 매달 구제비로 $1000 정도를 지불하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자원 봉사에 참여하라! 대충 이 정도 수준으로 예수님의 명령을 이해하고 지키면서 스스로를 예수님의 제자로 규정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수준 이상의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노예가 되라고 하셨다. 선한 사마리안인처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도 되지 못한다고 하셨다. [ 10:36] 그런데 어떻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한 정도의 사랑의 실천만으로 제자가 될 수 있겠는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친절은 죄인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도 더 잘 실행을 한다. [ 5:47]

주류 기독교도들 사이에선 한달에 $1000 이상을 구제비로 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길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람들에게 모든 소유를 팔아서 이웃에게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하셨다. [ 19:21] 콘스탄티 이전의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이 명령을 실행하지 않으면 크리스챤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 일에 신실하지 않은 자들은 저주를 받아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다. [ 5:1~5]

주류 기독교인들은 고급 주택가, 아파트에 살면서 게토화된 달동네 등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원 봉사를 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명령을 실행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런 온건한 수준의 명령을 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예수님이 천국을 뒤로하고 우리 중 하나, 그 중에서도 왕이 아닌 노예의 모습으로 오셨듯이, 우리도 게토에 들어가서 그들과 하나되기를 요구하셨다. 콘스탄틴 이전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 요구에 충실했다.

그러나 현대 주류 기독교도들에게 이는 너무 극단적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 보다 공자를(한국인들의 경우), 또는 아리스토델테스를(서구인들의 경우) 더 좋아한다. 물론 공공연히 이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자의 가르침 수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행 원칙 수준에서만 실행함으로써 예수의 제자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 주류 그리스도인은 실효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라기 보다는 공자의 제자이거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다.

우린 일요일마다 교회 모임마다 행해지는 예수님에 대한 립서비스를 그만 두어야 한다. , 우린 복음서에 쓰여진 예수님의 구체적인 실행 메시지를 뭉뚱그려 일반화하고 예수님이 명백하게 지시한 구체적인 실행의 가르침을 무시한다. 그러면서 온갖 종교적 수사와 언어로 스스로를 치장하며 거역의 죄를 숨기려 한다.

 그분의 가르침의 핵심은 사랑이다. [ 15:12]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어 그 가르침의 의미는 더 소프트지는 것이며, 다른 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구는 이 수준 너머에 있다. , 친구를 위해 그대 자신(육체, 자아)을 죽음에 넘기우는 자리까지 가기를 요구한다. [ 15:13] 주님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했듯이 우리가 서로에게 이 말씀을 실행할 것으로 기대하신다. [ 15:14]

예수님은 사랑이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 모호하고 추상적인 수준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라면 어떻게 사랑을 실행해야 할지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이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어떤 댓가를 치룬다 할지라도 이를 실행하는 해야 한다고 믿고 지금도 실행하고 있는 자들이 아나뱁티스트들이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our-way-of-life-and-the-evaluation-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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