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낯선 경험들

&4/2/2014 11:29:16 AM

후터라이트와 어울려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류 백인 기독교인과는 공유하기 힘들었던 낯선 경험들을 하곤 했었다

외출을 하고 다녀오면 우리 집 잔디가 때로는 이상하게 깔끔하게 깎여 있을 때도 있었다. 범인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되었다. 어느 날 우리가 외출 이후 집에 돌아올 때, 잘 아는 후터라이트 친구가 잔디를 깍는 것을 발견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여럿 후터라이트 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의 경험도 주목할 만 했다. 그 때 내 아내는 무척이나 바쁘게 손님 맞이 준비를 해야 했다. 한 후터라이트 가족이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그 집의 부인 되는 분이 아내에게 청소를 도와 줘도 되냐고 물었고 아내는 즐겁게 도움을 요청했다. 손님으로 초대 받은 사람이 약간은 흥분된 어조로 조심스럽게 청소를 도와줘도 되냐고 묻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청소를 시작했는데, 청소 광경이 새로웠다. 보통 미국인과 캐나다인은 정리 정돈을 하고 진공 청소기로 바닥 먼지를 빨아 들이는 것으로 청소를 끝낸다. 그런데, 후터라이트 아낙네는 바닥에 무릎은 꿇고 물걸레로 마루 청소를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 금발의 백인 여자가 무릎을 꿇고 우리 집 마루와 화장실을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내게 하나의 의문이 솟아 올랐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무엇이 즐거이 잔디를 깎아주고, 집안 일을 행복하게 도와주게 만들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가 후터라이트 친구들을 도와 줄 때에 그들과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었다.

가을 수확 철이 되면 농사를 짓는 후터라이트 공동체는 무척 바빠진다. 이들은 대규모 복합 농을 한다. 닭장, 돼지 축사, , 거위, 감자 농사, 각종 야채, 밀 농사, 옥수수 농사 이들의 농사 규모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수확 철에는 집중 적인 노동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대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적은 숫자지만 도와주러 간다. 감자 캘 때도, 수만 마리의 닭을 잡고 정리할 때에도, 우리의 수작업이 필요할 때에는 도움을 주러 가곤 했었다. 그러면 이들이 너무 기뻐하며 환영하곤 했다.

이들과의 노동은 마음 깊은 곳을 만지고, 황홀한 노동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 주곤 했다. 육체는 힘들었는데 내 영혼은 기뻐 춤을 추고 있었다. 아무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씻은 닭을 아이들이 걸어주면 우리는 이를 하나씩 포장을 해야 했다. 한 사람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 다른 이들은 화음을 넣어서 독일어로 화답을 했다.

같이 노동을 하는 한 여자분이 놀라운 고백을 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서 노동()을 하고, 너희는 우리를 위해서 노동()을 한다. 서로를 위해서 바쳐진 삶을 살고 있다. 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

이를 단서로 일이 끝난 다음에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대화를 시작 했다. 대화 결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노동을 함을 알았다. 후터라이트에 의하면 노동을 통한 몸을 바침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들에게 사랑은 감상도 아니고, 추상적인 교훈도 아니다. 이들에게 사랑은 구체적인 노동으로 표현된다. 자기를 살아 있는 제사로 주는 헌신으로 사랑은 표현 되었고 실천되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일을 해주고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이들의 엄청난 노동 생산성의 비밀을 알아 내었고, 이러한 영성의 기초로 인해서 핍박과 추방으로 반복적인 재정적인 재난에 직면하면서 다시 일어나게 만들었던 영적인 자산을 발견했다.

그 때 안 사실이 있었다. 천국에 대한 그림이 달라진 것이다. 천국은 강가 잔디 위에서 하프 소리를 들으면서 비치 파라솔 밑은 의자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랑함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바쳐진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노동을 통해서 자기를 드리는 곳에 천국이 있음을 알았다.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제사로 서로를 위해서 드려진 삶을 사는 이들 사이의 교제가 있는 곳이 천국이었다.

우리 집 잔디의 비밀이 풀렸다. 그 영혼이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후터라이트 형제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 적극적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우리 집을 방문했는데, 우리가 없었다. 그리고 잔디가 깨끗하지 못한 것을 보고 행복한 마음으로 잔디를 깍고 돌아간 것이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잔디를 깍게 만든 것이다.

노동으로 자기를 드리게 만드는 사랑과 진리가 공동체의 기초이며 힘이었다. 여기 이 땅에 하나님 왕국, 곧 천국이 있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the-foreign-experience-of-heaven

자치사법권과 상호지원이라는 공동체의 기초

&2/5/2013 2:41:09 PM

중세 자유도시 및 길드의 기초는 독립적 사법권과 상호지원이었다. [755p214Tb]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것은 법의 독립을 말한다. , 자체적으로 법을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국가의 경찰 제도를 대체하는 시스템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법권의 독립의 의미는 국가를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호지원은 공동 사업을 가능하게 한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이 역시 국가의 기능을 대체한 것이다. 이러한 상호지원을 통해, 경제적 파산 다음에 오는 노예화로부터 자유로워 졌다. , 상호부조를 통해서 모든 노예제에서 해방 되었다. [755p218Ct]

이렇게 해서 중세 자유도시와 길드는 국가나 관료나 경찰 제도를 통해 독점했던 모든 기능을 구현했다. [755p216Ct] 이들은 단순한 자치경영이 아니라, 국가를 대체했다. [755p219Cc] 이들은 더 이상 국가라는 정치적 형태를 더 이상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755p219Bb] 그제서야 자유가 왔다.

같은 원리로 초대교회와 재침례파는 중세길드 이전에 국가 사법체제에 가서 분쟁을 해결하고 정의를 호소하지 말것을 가르친다대신 교회 내에서 모든 분쟁이 처리되어야 함을 주장했다독립적 사법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교회가 먼저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 방법론으로 독립적 사법권과 상호부조를 실현함으로써 선구자, 선견자, 빛이 되었던 것이다.

콘스탄틴 이후 로마제국과 로마교회가 결혼해서 로마 카토릭을 탄생시키기 이전까지는 거의 모든 초대교회가 지킨 절대 원칙이었다. 로마카토릭 이후 제국이 하나님 나라가 되어 버렸기에 이 원칙은 지금까지 아나뱁티스트를 포함한 소수 비주류 그룹에서만 철저하게 지켜졌다. 

독립적 사법권과 상호지원은 하나님 나라의 기초이다. 다만 초대교회와 재침례파가 길드와 다른 것은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서 투쟁이라는 방법론을 동원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the-basis-of-self-jurisdiction-and-mutual-support

교만과 시기심라는 지옥, 겸손 속의 천국

&3/11/2014 11:07:14 AM

90년대는 미국의 황금기였다. 클린턴 정부의 IT 권장 정책으로 미국의 IT 분야는 돈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바람을 타고 나도 미국 IT 회사에 취직을 했다.

직장이 미국 교외 지역에 있었다. 그 지역은 한국 사람들이 많지 않은 지역이었다. 한국 장을 보거나,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서 시내에 있는 한국 가게를 들러야 했다. 그 동네 신출내기였기에 인사를 해야 했고 소개를 해야 했다. 여기서 낯선 감정들을 경험했고, 이를 이해하고 다루기 위해 고민해야만 했었다.

한국에 살았을 때는 사회적으로 비교적 균등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만 접촉할 수 있었다. 사는 동네가 그러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다른 이들의 복잡 다단한 심리를 자주 접촉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계급 상승을 추구한다. 교포 사회에서 이민 1세들의 꿈은 주류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다. [Msg15] 그런데, 우리 가족은 그들이 꿈꾸는 주류 사회 진출부터 이민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부러움이 있었고, 질투가 보였다. 

교포사회 사람들은 흔히 못사는 흑인 동네에서 스몰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흑인들은 보통 장사를 잘 하지 않는다. 동네가 더럽고 위험하기 때문에 백인들도 흑인 동네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을 꺼린다. 무주공산이다. 그래서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이 들어가서 장사를 시작하면 돈을 쉽게 벌었다고 한다.

먼저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도 이 점을 알고 흑인 동네에서 비즈니스 시작해 성공한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한국인이나 유대인이나 무주공산을 알아보고, 위험을 감수해서 재정적 성공을 한 점에는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성공한 이후 성공을 누리고 관리하는 방식이 한국인들과 유대인들의 다른 점이라 한다. 

성공을 하면 많은 수의 한국인들은 흑인 동네에서 부유한 백인 교외 지역으로 이사하고 낡은 차부터 바꾼다고 한다. 그리고 주급과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흑인들을 포함한 경제적 약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 자랑스럽게 BMW, 벤츠, 렉서스와 같은 고급 차를 몰고 출근한다. 이 차를 당당하게 가게 앞에 주차함으로써 자신들이 최근에 획득한 경제적 신분을 과시 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질투심과 부러움을 즐기고 자신의 상처입은 열패감을 만회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이웃 사람들이 비참한 느낌을 들게 함으로 얻는 더러운 만족감을 즐긴 것이다. 한국인들 끼리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하던 비교 질 자랑 질 버릇이 어디 가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서 새는 박아지가 미국에서도 샌 것이다.

한국인들의 자랑 질이 시작이 되면 조만간 그 가게가 흑인 강도에 의해 털린곤 한다고 들었다. 흑인들은 자기들 동네에서 자기들 주머니를 털어서 부자가 되었음에도 흑인들과 친구가 되어 흑인 사회에 공헌을 하기를 거부하고 자기 차부터 바꾸고 이웃인 흑인들로부터 스스로 분리 구분하고 거만하게 구는 것에 분노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한국인들이 이렇게 저렴하게 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무시할 수 없는 많은 숫자의 한국들의 삶과 성공에 대한 동기가 멸시 당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것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활한 유대인은 성공한 이후에도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에 몰던 낡은 차를 몰고 가게에 간다고 한다. 비록 집은 멀리 교외 지역으로 이사 했어도 가게에 출근 할 때에는 옷도 허름한 옷으로 갈아 입는다. 집에 있는 고급 차는 절대로 가게로 몰고 가지 않는다. 흑인들이 봐도 좌절감을 느끼지 않게끔, 그리고 유대인 가게 주인도 그들 중 하나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에 비해 일부 한국인들은 온몸으로, 태도에서, 차에서 나는 너희와 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한다. LA 폭동은 다민족 사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한국식으로 오만한 길로 살다가 흑인들의 사회적 분노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다행히 이제는 교포 사회는 예전보다 많이 성숙해 졌다.

한국인들끼리만 있으면 한국인들이 어떤 지에 대한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 안의 반사회적 또는 반공동체적 요소는 이렇게 다른 문화와 비교하고 접촉할 때 더 잘 드러난다. 

유대인의 경우 2,000년 전 조상의 땅을 잃어 버리고 방랑을 시작했다. 그들의 삶은 다수 이방인에 둘러 쌓여 있는 삶이었다. 유대인이 가난하던, 부자던 이는 쉬운 삶이 아니다. 가난하면 무시하고 차별 당한다. 부자이면 질투하고, 심하면 죽이거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하려 한다.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앞서 설명한 흑인 사회와 노골적으로 충돌하지 않은 생활의 지혜를 획득했으리라 여겨진다. 한국인의 경우 아직은 어설프다.

우리 모두 안에 자신의 성공과 번영에 대한 욕구가 있다. 그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제치고 성공한 사람들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파괴적인 질투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을 즐기는 것을 보면 이들이 실패하는 것을 봐야 만족이 되는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를 유대인은 잘 이해하고 처신하고 있는 듯 했다.

펜실베이니아로 직장을 옮기기 전에 다른 주의 한국교회를 잠시 다닌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교회 주차장에 벤츠, BMW, 렉서스, 아큐라가 많은지! 사람들이 대충 어떤 일을 하는 지, 수입의 규모가 어떤 지를 아는 나로서는 황당한 그림 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겪는 사회적 좌절감을 교회라는 사회 속에서 보상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상처 받고 좌절된 그들의 심리를 이해 할 수 있었으나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 보상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들의 병든 마음 상처 받은 자존심이 보였다. 이로 미루어 그들이 얼마나 비참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서 안타까웠다.

직장 때문에 이사를 했고 펜실베니아 웨스터체스터 카운티에 살았었다. 바로 옆이 랭커스터 카운티였다. 우리는 웨스터체스터와 랭카스터 카운티 경계에 살았었다. 우리가 가는 월마트에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발견했었다. 이들이 아미쉬였다. 우연히 우리는 아미쉬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이사를 갔던 것이다. 이렇게 아나뱁티스들과의 인연이 시작이 되었다.

아미쉬에 대한 호기심으로 아나뱁티스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랭커스터 카운티에 있는 가장 오래된 메노나이트 교회 중 하나를 가게 되었다. 한국 교포 교회와 수 많은 차이가 있었다. 먼저 가장 눈에 뛴 차이는 자동차였다. 고급 차가 하나도 없었다. 반짝반짝한 최신 중형차도 없었다. 차들은 대부분은 낡고 겸손해 보였다. 사람들의 복장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고급 명품을 걸치지 않았다. 명품 전시장이었던 한국인 대형 교회의 모습과 판이한 차이였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지에 질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이 Plain People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들이 Plain People이라는 삶의 양식을 선택하게 한 내적 기반을 이해하자, 근본적인 차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겸손하고 낮아지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삶의 방식으로서 그들은 Plain People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더 이상 사람들의 평가에 묶이지 않고, 노예가 되어 죽기까지 낮아진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도 낮은 사람,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의 외적 표현이 그들의 자동차였고, 옷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우리는 한참을 자기 소개를 하고 인사를 해야만 했다. 예배 후 약 30분이 지나서야 우리는 교회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외에 아무도 교회를 떠나기 위해 주창장으로 나선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복장과 태도에서 아무도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알아봐 달라고 조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군집을 이루고 사는 개나 원숭이와 같은 짐승처럼 같은 집단 내의 이웃을 패배자(Underdog)로 만들어 자신의 성공과 번영을 칭찬하는 시녀와 팬클럽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웃을 딛고 일어서서 내려다 보기 보다는 오직 위로만 향하는 야망의 길에서 내려와 다들 교회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를 안부를 궁금해 하고 겸손의 관계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돌아오는 차에서 스스로를 돌이켜 봤다. 당시 나는 고연봉 자였다. 아큐라라는 혼다 고급차 브랜드를 몰았었다. 다음에는 렉서스나, BMW로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단순히 재정적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흔한 차이기도 했기 때문에 쉽게 생각 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당연한 생각이고, 비난 받지 않은 아이디어다. 이런 생각이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는 부끄러운 삶의 방식임을 보았다. 이는 곧 하나님과 비기려 했던 사탄의 생각,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아담과 하와의 생각과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메노나이트 교회를 방문하고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쪽 팔렸다.

그 이후 우리도 자발적인 아나뱁티스트가 되어서 그들처럼 스스로 Plain People이 되어 예수의 생각과 예수의 길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즉, 다른 이들의 세상적 성공을 질투하지도 않고, 자신을 높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어떠함을 차나, 집, 옷, 사회적 지위, 학위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교만한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부자 코스프레를 하거나, 세상적 성공을 Show Up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처럼 Plain People이 되기를 원했다. 이렇게 해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랭카스터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 천국을 보았다. 서로가 은밀히 경쟁하고 비교하면서 서로 멸시하거나 남몰래 비참해 하지 않았다. 서로 간에 누가 잘나가지는 가지고 관계의 긴장이 없었다. 누가 더 잘 낫는지를 가지고 전쟁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낮아지기로 결정하고, Plain People 중 하나가 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을 했고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자 평화가 있었다. 거기에 천국이 있었고 참 공동체적 관계가 있었다. 

Following the Jesus-way in lifestyle

 

(미국 펜실베니아에 살고 있을 때에 Lancaster의 Amish Village를 방문한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Anabaptist를 소개하는 Visitor Center가 있었다. 거기서 찍은 사진이다.)

후터라이트, 아미쉬, 그리고 올드오더 메노나이트는 마더런 메노나이트와 같지 않다. 신학교도 없고, 외부와 접촉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후터라이트가 왜, 어떻게 해서 Full Community, Community of goods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한 내적 기초를 추적하려면 직접적인 접근을 해야만 했다. 그러한 이유로 직접 방문을 하고 사귐을 시작했다.

또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현대화한 일부 메노나이트의 얘기들을 들으면 공산주의적 공동체를 살고 있는 후터라이트 내적 태도를 역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그 중의 하나가 이 사진의 글이라고 본다. 

분명한 것은 후터라이트이든, 메노나이트이든, 아미쉬든 아나뱁티스트는 교리나 종교적 의식을 통해서 예수를 따르는 것보다는 라이프스타일로, 존재방식, 존재양식으로 예수를 따르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하나님 나라(땅에서의)에 대한 관심과 헌신 때문이기도 하다.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following-the-jesus-way-in-life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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