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755] 만물은 서로 돕는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르네상스, 김영범 옮김>

[755p147] 이미 언급했듯이 미개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부족의 삶과 철저히 동일시함으로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자신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부족의 일로 여기고 있었다. 이들의 모든 행동을 규제하는 것은 무시히 많은 불문율이다. 이 불문율은 모든 행동의 옳고 그름을 자기 부족에 이로운지 해로운지에 따라 판다하는, 이는 부족의 공동 경험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1.4]

[755p149] 씨족 사이에서 독립된 가족이 나타나면서 기존의 통일성이 저해되었다. 가족이 독립되면 사유 재산이 독립되어 부의 축적이 일어난다. [1.5]

[755p200] 사실 교회와 로마법 연구자들의 영향을 이중으로 받아서 당시의 시대정신이 전적으로 변화되고 나서야 비로서 왕의 인격에 신성한 관념이 부여될 수 있었다. [1.3]

[755p204] 수많은 중심지가 촌락 공동체의 힘으로 건설되었다. 공동체가 벽을 건설하고 나면 이 새로운 성역 안에서 공동의 이해가 발생하면서 앞으로는 외부의 침략은 물론이고 영주와 같은 내부 적의 침탈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요새화된 울타리 안에 자유로운 삶이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도시가 탄생��� 것이다. [1.1]

[755p214Tb] 모든 길드는 자치 사법권과 상호지원이라는 이중의 원리를 근간으로 조직되었다. 

[755p216Ct] 길드 제도는 인간 본성이 지닌 아주 뿌리 깊은 욕구를 충족시켜주었고 이후에 국가가 관료나 경찰 제도를 통해 독점하였던 모든 기능을 구현하였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길드는 모든 상황마다 그리고 살면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행동과 충고'를 통해 서로 도와주는 단체였고, 정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국가 간섭의 근본적인 특징인 형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모든 경우에 인간적이고 형제애적인 요소가 체택 되었다는 점에서 국가 조직과는 다르다. 

[755p218Ct] "코뮌은 상호부조를 서약한다.----새롭고 혐오스러운 말이다. 이를 통해 농노들은 모든 노예제에서 해방되었고 이를 통해서 법을 위반햇을 경우에도 법적으로 규정된 벌금을 따라 선고를 받을 뿐이다. 농노들이 항상 지불하곤 했던 지불 의무는 없어졌다."라고 기베르 주교(Guilbert de Nogen, 노장의 수도원에서 대수동원장을 지냄)는 쓰고 있다. // #위의 글을 보면 주교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아이디어를 혐오 했음을 보여준다. 주교는 당시 지배자이고, 가토릭이라는 제국 종교의 기득권자였다. [1.2]

[755p219Cc] 자치 사법권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었고, 이는 곧 자치 경영을 의미했다. 그러나 코뮌은 단순히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일부는 아니었고 - 이 당시에는 차치적이라는 말도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 본질적으로 국가 그 차제였다. 코뮌은 이웃들과 전쟁이나 평화를 맺을 권리, 연합이나 동맹을 체결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755p219Bb] 도시는 하나의 국가였고, 어쩌면 좀 더 눈여겨 볼 일이지만, 도시의 권력이 상인이나 귀족과 같은 특권 계급에 넘어간 경우에도 내적인 도시의 생활과 일상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이른바 국가라고 하는 정치적인 형태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 

[755p222Tb]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에게 균등하게 꼭 필요한 음식과 주거"를 공급해 주는 것이 각 도시마다 근본적인 원칙이었다. 식료품이나 기타 생활필수품(석탁이나 나무 등)을 시장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사들이거나 다른 사람들은 배제된 상황에서 특별히 유리한 조건에서 사들이는 행위, 한마디로 선매는 전적으로 금지되었다. [1.7]

[755p223Bt] 즉, 생필품은 시의 명의로 특정한 공무원이 구매하고, 그런 다음에 상인들에게 할당된 몫을 분배했으며, 항구에 들어온 물품은 시 당국이 매입을 거부하지 않는 한 아무도 구매할 수 없었다. [1.8]

[755p223Tc] 요컨대 도시에 기근이 닥쳐오면 모든 사람들이 다소간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큰 재난인 경우를 제외하면 자유 도시가 존재하는 한 불행히도 우리 시대에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하듯이 그 와중에 굶어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1.6]

[755p224Tb] 프랑스의 아미앵 시에서는 소금을 구매하여 모든 시민에게 보통 원가로 나누어주었다. [1.9]

[755p225Ct] 도시 내에 모든 교역에서 가격 결정을 판매자나 구매자가 아닌 제3자, 즉, '사려 깊은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분명히 널리 퍼진 관습이었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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