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후터리안만이 거기까지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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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ct Biblicism 때문이다. [1] 다수 개신교도보다 소수 Anabaptist가 성경적용에 있어서 엄격하다. 그 Anabaptist 중에서도 Hutterites가 사적 소유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지키는 것에 더 엄격한 면이 있다.

부자 청년의 비유를[마태 19:16~22] 통해 부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함을 설명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에 나와 있다. 하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전달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이를 실제로 지키는 교회는 거의 없다. 설교자도 이 주제는 피하고, 듣는 자도 이 얘기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아가 거부하는 주제는 모두 피하고 무시하고 예수님의 엄중한 말씀이 마치 성경에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게 주류를 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류 제도 종교의 게임의 룰이다.

후터리안은 성경, 특히 복음서의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었다. 말씀을 받기 어려워서 다시 자아의 요구와 기대로 돌아서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사유재산에 대한 예수님의 직접적이고 분명한 가르침으로부터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들은 초대 교회만 실행 가능했던 기독교 공산주의적 삶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부자와 이 시대의 부자들이 재물 때문에 근심하여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돌이킨다면 등에 실려 있는 재물에 걸려서 바늘귀 문을 통과 못한 낙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도 낙타가 바늘귀 문을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하셨다. [마태 19:24] 낙타는 그래도 등에 진 짊을 내려 놓고 무릎을 꿇리면 바늘문을 통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등에 짊어 진 짊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낙타와 달리 부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부자 청년처럼 짊어진 재산을 내려 놓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 그들이 삶은 사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지키기 헌신되었고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바쳐져 있다.

부자들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너무나 잘 적응하고 성공했다. 낙타와 달리 그들이 보기에는 가지고 있는 자산은 영혼의 짊이 아니라 이땅에서 육체적 삶을 유지시켜주는 반석이고, 산성이고, 생명줄로 여기지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명백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부자로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에 가고 싶어하는 욕망에 사로 잡히기 쉽다.  

자신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많은 재산이 주는 사회적 지위와 안정감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심지어 재산을 짊어 진체 바늘귀를 통과 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까지 한다. 더 나아가 그들의 바램에 따라 거짓된 복음을 가르치는 선생을 두기를 좋아하고 예수님의 명백한 말씀을 거역하려 하는 유혹에 잘 빠지기 쉽다. 심지어 예수님을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훼방하고 핍박하는 지리까지 가기도 한다.

 

이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얼마 안되는 재산을 쉽게 버릴 수 있어서 더 쉽게 하나님 나라의 삶의 양식으로 들어올 수 있다. 곧 서로의 필요에 따라 서로를 위해 헌신된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즐거히 들어온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얻는 것은 좋은 거래인 것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 13:44~48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부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부자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오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없는 묶여 있는 짊이 있다. 재산의 짊이 무거울 수록 집착도 더 강하다.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하늘 나라를 얻는 거래가 남는 거래라는 것을 받아 들이는데 더 많은 이해와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자 청년은 근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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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utterite Studies p84, Strict Biblicism: The Hutterites, however, in their strict Biblicism, became extremely sensitive and alert to the pitfalls of “mammon” in all its form.

“As the beetle lives in the dung. And the worm in the wood, so avarice (or greed) has its dwelling place in private property.” (1599) Whosoever refuses communal living, they taught, shows obvious sympathy for avarice (or greed).

 And then they quote the example of the rich young man in the parable who could not enter the Kingdom of God because he was not willing to sell all that he had and give it to the poor. [마태 19:16~22]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why-was-it-only-the-hutterites-who-went-that-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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