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개척 시대의 흔적

2008년 방문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우리 아이들과 우리들은 퍼스트 미니스터를 그렇게 부른다.)가 우리를 자기들의 엔틱들을 모아논 곳을 보여주겠다면 데리고 같다. 거기에 오래된 다리미, 장난감,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입구 쪽에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세수를 할 수 있는 세면대였는데, 접이식이었다. 나는 왜 접이식이냐고 물었다. 그 사연은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후터라이터는 칼을 쓰지 말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 말씀에 대한 순종은 이들을 평화운동으로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 2:4'의 말씀을 실현시키게 되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 2:4)

후터라이트는 우크라이나(러시아)를 떠난 역사가 있다. 고생 끝에 개척해서 얻은 비옥한 흑토 땅을 떠난 이유 중 하나는 전쟁에 나서라는 정부의 요구 때문이었다. 1874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고생 끝에 겨우 개척이 끝났는데, 미국 정부도 이들의 평화주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에 요구에 적극적으로 항의한 후터라이트 젊은이가 알카트라즈에서 죽어 나갔다.

요즘 같은 시대에 평화운동은 세련되고 그리 위험한 운동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목숨을 포함해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평화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엄격하게 지킬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그 이전에 트라실베이나, 그 이전에 항가리, 그 이전에 모라비안, 그 이전의 티롤, 그 이전의 스위스에서처럼 이들은 개척한 모든 것을 버리고 캐나다로 이주했다.

첫 겨울이 힘들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집에( 40) 8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가구를 놓을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접이식 세면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2009년 여름에 방문했을 때에 젊은 친구에게 들었다. 198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80년이 되어서야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여유가 어느 정도 생겼다고 한다.

이들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감동도 있지만, 마음 한구석이 늘 아린 것을 느낀다.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치룬 대가 때문이다.

자기 번영을 위한 선택과정 중에 고생이 아니다.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한 자발적인 고난의 선택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처럼 질고를 아는 자들이라 말할 수 있다. ( 53:3) 이들의 삶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의 남의 고난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1:24)

젊었을 때에 자기 몸 하나 던지는 것은 쉬워 보인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그나마 기득권이라도 가진 사람이 가족의 운명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믿음을 실행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사회운동을 하건, 또는 선교사로든 헌신을 했지만, 결혼 이후, 사회적 지위를 얻고 난 이후 결국 자신을 위한 삶의 길로만 되돌아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제자도의 길은 모든 것을 걸을 것을 요구하고, 모든 것을 걸어야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길이다. 근 500년간 기독교 공산사회의 삶을 살아온 후터라이트의 걸어온 자취와 존재는 비용을 먼저 계산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의 엄중함을 다시 생각나게 만든다. ( 14:28)

14: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English Text: http://jungwonyang.com/post/Msg1011-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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