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하나님 나라 운동

민주주의 운동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흐름 중 하나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기본 목표는 계급에 의한 지배체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왕의 제도를 돌이키는 일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그 흐름과 같이 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위해서 왔다. 무릇 모든 구원 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다.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함으로 하나님 나라 있을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운동에 헌신함으로 이웃 사랑의 길의 정도에 서 있을 수 있다. 

예수 이후 하나님 나라 운동은 정치경제적 운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제국을 붕괴시키고, 국가를 전복하는 차원에서의 정치투쟁은 아니었다. 

개인을 존재 상태를 혁명하고, 변화된 개인들의 연대인 공동체의 삶의 양식을 본질적으로 바꾸어서 왕의 제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제자들의 의무는 세상으로부터 종속성을 벗어나기를 결정하고 변화된 이들을 위한 양의 우리를 만들고 양들을 치는 것이었다.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방식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가장 큰 장애는 제국이었다. 늘 제국은 교회 공동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죽이려 했다. 500년 전의 아나뱁티스트를 이 땅에서 지우려고 했던 카톨릭 및 프로테스탄트 제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계몽 시대 이후 변화가 생겼다. 민주주의 국가가 생기고 난 다음부터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한 교회 공동체를 향한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핍박은 약화되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국가는 지배자의 폭주를 통제하기 위한 법체제, 지배자들이 마음대로 조세를 겆지 못하게 하는 조세 법률주의 등을 내포하고 있다. 왕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확립하려는 노력이었다. 일반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기반한 헌법과 법의 지배는 상식의 지배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공동체를 세우는 방식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한 핍박이 현저히 줄어 들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들의 양심과 상식에는 하나님의 뜻이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부분에서 먼저 진도를 나간 미국으로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가 이주를 했다. 현대 아나뱁티스트들의 고향이 펜실베니아가 된 것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최선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최악을 방지하는 것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는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힘이 불균형 상태에 있으면 힘 있는 사람들은 법을 지배하려 들 것이다. 힘 있는 사람들의 통제 아래에 있는 법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하기 보다는 사회적 강자의 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이 순간 전진해야 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각성된 시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법, 곧 다양성과 자유를 존재하고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법에 의해 지배하는 국가 체제가 내재하는 절대 권력이라는 악의 폭주를 막는다. 이는 사회적 틀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한 우리들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양심적이고 자유로운 시민들을 키워내는데 공헌해야 한다. 

동시에 인간성이 꽃피는 최선의 사회를 아래로부터 만들기 위해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교회 공동체는 초대 교회처럼 Community of Good을 지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주, 협력, 연대, 공생의 기초 사회를 하나씩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공동체 밖의 개인주의 사회와는 다툴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적 법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개인주의적 삶의 양식으로 살던, 교회 공동체 내의 공동체적 삶의 양식으로 살던 이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공동체주의에 기초한 공유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해 주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한 민주사회는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사회에는 공동체주의에 기초한 공유사회는 사회와 끊임 없는 갈등을 해야 한다. 

따라서 공동체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개인주의로의 성장과 민주사회로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쉬지 말아야 한다. 현 시점에서 사회적 인구의 대다수가 공동체주의에 기초한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수가 동참 가능한 현실적 가능성이 있는 것은 개인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개인의 인권이 존중 받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비전은 이 너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공헌을 하는 이유가 있다. 이것이 공동체주의적 가치를 실행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한 사회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는 이들도 하나님 나라 운동에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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