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실수와 실패 (근본주의의 실패)

결국 에고의 욕심과 잔꾀가 논리에 시스템에 구멍을 낸 것이다. 먼저 기독교의 실패부터 살펴 보면 유가의 실패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초기 기독교는 사랑의 법에 따른 삶의 열매를 중시 했다. 이 삶에는 사실 내적 믿음의 요소가 먼저 있고,  내적 믿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순종을 동반한 삶으로 따르는 것이 핵심이었다.

결국 종교 엘리트가 지배하는 제도 기독교가 되면서 사랑의 삶은 엘리트를 위한 종교적 공로를 중시하는 것으로 변질 되었다. 부패한 중세 카톨릭에서 이는 구원은 인간이 공로를 세우고 구원을 구매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변질 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밀어 붙인 것은 당시 교황권을 주변에 있었던 부패 세력이었다. 교황에게 충성하는 것이 구원을 가능케 하는 종교적 공로가 되었다. 결국 교황은 종교적 행위, 곧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서 선동하여 십자군을 조직해서 중동에서 대량 학살을 일으켰다. 

개신교는 구원을 사고 파는 참담함에 대항하기 위해서 내적인 믿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러 세대가 흘러 이 시대의 한국 개신교는 순종 없는 삶이 없는 값싼 복음으로 변질해 버렸다. 개신교 목사의 영업질에 제자도에 따른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종교 엘리트들이 먼저 타락했고, 상식에 벗어난 논리로 약한 사람들을 홀려 버린 것이다. 

자기들만 지옥에 가지 않고 순진하고 교육 받지 못한 다수 민중도 진리에 접근을 방해하고 왜곡했다. 예수 당시의 종교 기득권들자들과 다름이 없게 되어 버렸다!

이들 스스로 종교 엘리트라고 믿는 부패한 이들은 순진한 이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가이드가 되어 버렸다. 

유가는 결과적으로 실패 했다. 삶에서의 천명의 실행에 초점을 맞추고자 부실한 타락한 불교 또는 퇴락한 도교에 반발해서 유교는 철저하게 현실 세계의 인륜을 중시했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악의 트리오들, 곧 욕심과 에고의 화신들은 시스템에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원칙은 기독교에서와 동일하다. 유교가 주목 받게 된 그 시대에 효과가 있었던 논리를 악용하는 것이다. 일단 인륜을 중시하는 유가가 당대에 주류가 되자, 이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 붙이면서 사익을 취한 것이다. 


과학기술이 서구에 뒤처지기 시작한 조선시대 중반 이후 백성들은 삶을 개선 시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치, 경제, 사회, 기술적인 혁신에는 완전히 무관심 하고 예송논쟁 같은 삶과 유리된 헛짓거리만 했다. 그 시대 예송논쟁을 근대의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과 인재를 소모한 미친 짓이었다. 그렇게 조선을 인재를 잃고 기회를 잃어 버렸다.

유가의 실패는 유가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고, 조선의 실패가 되었다. 그리고 엇난간 성리학의 잘못된 관행은 이 민족의 제 2의 본능이 되어 민주주의를 좀 먹고 조직문화의 병폐가 되어 버렸다. 

결국 에고의 사람, 욕심의 사람이 해체 못하는 완벽한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특정 논리가 절대화 되면 그들은 거기에 붙는다. 유가의 특정 논리가 절대화 되면 또 거기에 붙어서 그들은 사익을 추구한다. 특정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면 거기에 편승하고 사람들의 삶과 상관 없이 그 논리를 사익에 위해서 이용한다.

절대적인 힘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정치권력에 의해 특정 사상과 논리를 절대화 하면 현실 세계에서 이는 절대적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사상, 또는 종교는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권력과 야합한 종교는 매우 위험하다. 

유가의 이상을 실행할 힘을 얻기 위해서 정도전은 정치적 힘을 추구했다. 유가의 이상에 따라 조선이 세워지자 조선은 유가의 논리를 절대화 했다. 그리고 일단 유가의 논리가 절대화 되자마자 유가의 논리가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유가의 논리에 대항하는 불가의 힘이 남아 있었던 시기 세종, 세조 때에 유가의 개혁적 성격이 더 강해다. 그 이후는 균형을 잃어 버린 추락의 역사이다. 균형추를 스스로 차 버렸고 스스로의 생각을 우상화 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가지 모두를 제대로 실행하기 어려운 것처럼 한 그룹이 모두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 사이의 균형은 필요하다.  반대 세력은 우리를 위한 또 다른 균형추이다. 

스스로를 그리고, 자기가 믿고 있다는 논리를 절대화 하지 말라. 다양성 속에 반대자가 있어야 완전해 진다. 일단 절대화 하면 절대 권력이 주어지고 그곳은 금방 환자들 악의 트리오인 악성 나르시스트, 소��오패스, 그리고 사이코패스의 놀이터가 된다. 그러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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